올해가 '천공의에스카플로네(원제:天空のエスカフローネ, 영어명 : The Vision of Escaflowne)'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지 10주년이라고 한다.
칸자키 히토미라는 여고생이 좋아하는 선배 앞에서 고백을 하고 달리기를 하다가 눈앞에 나타난 용(의 모양을 한 로봇)과 소년에게 이끌려서 가이아에 가게된 후, 운명적인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 환타지가 있으며, 운명이 있으며, 순정과 로망도 있다. 반면 전투병기들의 박진감이 있는 싸움도 복잡한 인간의 심리전도 있다. 그 당시에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에반겔리온에 가려서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 모양이지만 매니아들에게는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나도 무슨 내용인지 어려웠던 에바보다야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 작품이 더 재미있었다. 물론 내가 직접 찾아 봤을리는 없고, 누가 보라고 하도 성화여서 SBS에서 방영하는 것을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1화가 시작하면서부터 눈과 귀가 휘둥그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이바하군이 파넬리아국을 침공할 때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망토의 CG표현부터, 싸움씬에서의 박진감이라든지, 탄탄한 스토리와 배경이라든지, 이제껏 보았던 저녁6시대에 방영되는 보기 쉬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과는 스케일이나 레벨자체가 달랐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랄까, '이래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구나'라며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나름대로 신선했던 것은, 아까 말한 각종 영상효과도 있지만, 가이아에서 칸자키가 불행한 일을 예견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결국 그녀가 가진 두려움으로 인해 상상하는 나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었다는 반전, 디란두가 알렌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지금도 떠올리면 섬뜩한 으흐흐 광기어린 웃음;; 끝까지 설마 했다.), 그녀와 가이어의 인연은 그녀의 할머니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는 스토리였다. 그리고 로봇은 로봇인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어딘가 조종석에서 버튼이나 핸들을 잡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이메레프라는 인형병기를 조종사와 병기가 한몸처럼 직접 움직인다는 약간 구식인듯한 면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 중 또 하나는 바로 음악. 칸노 요코, 미조구치 하지메라는, 나의 인생에서 음악을 듣는 레퍼토리의 주도권을 쥔 사람들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SBS에서 방영될 때 나오던 오프닝만 들어서는 잘 몰랐는데(작은별의 어느 분이 신디사이저로 재편곡을 했더랬지;;), 원곡을 듣다가 충격을 먹었다. 무슨 만화주제가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현악악기들로 비트를 때리며 흘러나온다냐... 그 후에 아는 동생에게 추천곡이라고 건네받은 음악파일이 바로 'Angel'이었는데, 그 당시에 건네받은 파일은 그때 받은 소름이 돋는 감동과 함께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나에게는 칸노씨의 디스코그래피중에서 이 에스카플로네(4년후에 나온 극장판도 포함), 턴에이건담(이것도 극장판을 포함), 울프스레인, 이 셋을 베스트3로 뽑고 있다. 물론 그 뒤에 카우보이비밥이라던지 인랑이라던지 이름을 널리 떨친 작품들이 있다만, 서로 장르가 다르니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서도, 역시 SEATBELTS 보다는 바르샤바필하모니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가 내취향! 재능 폭발! 지금도 종종 들으면 시디 4장을 붙들고 감동!감동!감동! 역시 두 부부의 시너지는 대단, 쿨럭~ (너무 흥분했다. 자제효;;)
마지막에 'Farewell'가 흘러 나오면서, 칸자키가 지구에 돌아온 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제방 위에 앉아있는 반을 보고 웃는 장면이 너무나 찡해서 울었던 기억이 지금 나네. 그리고 이 작품을 가지고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들떠서 찬사를 토해내던 사람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