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길
요팽
2008. 11. 4. 16:45
'아키시노데라(秋篠寺)'라는 곳에 들리고 나서, 그 다음의 목적지인 '사이다이지(西大寺)'로 향하려 하던 때였다.
지도에서는 간단히 남쪽문으로 나와서 길을 따라서 15분 정도 직진을 하다가 어느 주점에서 왼쪽으로 돌면 된다고 나와있어서 별 생각없이 걸어서 찾아가기로 하고 남쪽문을 나왔다. 나오자 마자 눈에 뜨이던 표지판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길의 이름이 '역사의 길(歴史の道)' 인 모양이다. 별 생각 없이 확인하고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날은 날씨가 약간 요상해서 먹구름이 끼다 말다 해가 내리쬐다 말다 눈이 내리다 말다 하며 기복이 심했더랬다. 마침 그 때에는 제법 햇볕이 내리 쬐어서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도 잠시 벗어둔 상태였다. 그렇게 기분 좋게 5분정도 걸었을까. 눈앞에 나타난 것은 차가 쌩쌩 달리고 있던 옆으로 가르는 큰길. 그리고.. 더이상 직진할 길이 보이질 않는다. 조금은 당황을 하며 지도를 다시 보았다. 혹시나 중간에 옆으로 돌아서 가는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해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지만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내 눈앞에는 큰길 너머의 논밭밖에 보이질 않는다... '직진을 하라는데 도대체 길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그냥 옆으로 가면서 찾아볼까.' 그러다가 정말 미아가 되버릴 수도 있기에, 옆을 두리번 거려도 타이밍 좋게도 물어볼 사람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뒤를 돌아다 봤다. 다시 되돌아가서... 절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나... 되돌아가기엔 뭔가 억울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멀뚱히 다시 정면을 보다가 몇십초 후에 눈에 갑자기 들어온 논밭. 그냥 논을 가꾸기 위해서 내놓은 좁은 둑길인 것 같은데, 설마.. 저런 길을 지도에 표시할 리가. 그 곳으로 가려다가 저런 길을 따라가다 보면 늘 어느 집앞의 대문 앞에 막히던지, 논밭을 뱅뱅 맴돌던지 둘중 하나였다. 종종 감을 믿고 가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몇분 망설이다가 결국은 무슨 자신감인지 그냥 발걸음을 내딛고 그 길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보니, 폭이 약 1미터도 안되는 돌 깔린 길로 바뀌며 꽤 길게 뻗어 있었다. 그런 길을 오토바이도 잘 다니더라..(중간에 내가 옆으로 빠져줘야 했지만) 저 위에 사진처럼 약간 커브를 도는 곳 빼고는 정말 저런 길이 끝도 없이 꽤 길게 직진으로 뻗어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거짓말처럼 내 눈앞에는 터닝포인트인 주점이 나타났다.
순간 아까 지나치며 보던 이 길의 이름을 표시한 표지판이 생각이 났다.
길을 걷다 보면 변수처럼 앞의 길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보이던 샛길이 정말 내가 가도 될만한 길일지 망설일 때도 있다.
그때 마음을 접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면서 보였던 풍경과 흘러간 시간은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