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툭하면 시간 남을 때, 누구를 만날 때 그냥 밥먹는 것과 동급으로 하는 그런 영화보기는 나한테는 전혀라고 말할 정도로 해당이 안된다. 그렇다고 싫은건 아니고, 아예 내 개념에는 시간때우기에 들어가 있지 않을 뿐. 레코드숍이나 서점이나 다른데를 가지..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때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침묵이고, 심지어 소외감도 느낀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예매권까지 사놓고 혼자서 개봉 첫날 첫회에 극장으로 발을 옮기게 된 영화가 있다. 그것도 수많은 한국영화를 제쳐두고 뭐라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은 일본영화. '嫌われ松子の一生'. '키라와레마츠코노잇쇼'라고 읽고,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미움받는 마츠코의 일생'이란 뜻이다.(그런데 다른 사이트를 보면 '혐오스러운 마츠코'라고 등록되어 있는데 절대로 혐오스러운 주인공이 아니기에, '미움받는'이란 표현이 더 알맞을 듯 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카와지리 마츠코라는 여자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뒤, 조카인 쇼가 하나씩 그녀의 일생을 짚어가보는 그런 이야기. 이 작품의 원작은 소설인데 이미 베스트셀러라고 불릴만큼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뭐 그런건 조금 부차적인 거고 무엇보다도 나를 그렇게 기다리게 만든 이유는 역시 감독 때문이겠지. '나카시마 테츠야'씨라고, 2년전에 '불량공주 모모코'(원래 제목은 '시모츠마모노가타리')란 작품을 감독한 사람. 사실 그 불량공주 모모코는 칸노요코씨가 음악을 맡았다고 해서 그냥 생각없이 봤었는데, 꽤 충격이라고 할만큼 맘에 들어버렸다. 정말 화면을 보면서 재미있다 감동했다가 아닌 이거 너무 좋아라고 생각하게 한 말도 안되는 일이 벌여졌다. 나중에 다시 가서 보고, DVD까지 사서 생각나면 돌려보는 짓까지.. 그 후속작이 이번의 작품.
아마도 이번 작품도 평범하지는 않을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영화는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것 같다. 맘에 든 사람들에게는 극찬을 받고 안맞으면 완전히 쓰레기 영화가 되는.... 감독님의 인터뷰에서도 그랬듯이 '모두가 이 주인공을 좋아하리라고는 기대를 안해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대로..' 그러고선 피시식 웃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감상을 말하자면, 재미있다는 말로는 너무나 간단해서 이 복잡한 감동을 말로 늘어놓기가 정말 쉽지 않다..그렇다고 길게 풀어쓰자니 내 어휘력은 기대에 못미친다. 화면은 엄청난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화려하고 웃기고 기발하고 직설적이고.. 때로는 뮤비나 광고를 보는 느낌도 줄 것이고, 주인공은 불행한 상황에서도 계속 뮤지컬처럼 노래하면서 춤추고, 색과 조명까지 다 계산해 놓은 것 같은 배경, 그리고 볼거리가 많은 패러디 등등.. 불량공주 모모코 보다 훨씬 버전업된 그야말로 완전히 '나카시마 테츠야 월드'에 압도를 당한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무슨 괴짜 코미디오락영화 같은게 떠오르고, 눈앞이 정신없고 산만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관객들의 눈이나 현혹하는 오락영화로 밖엔 안보이겠지만, 직접 보면 그것만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다. 웃으면서도 눈물을 몇번이고 흘렸고 보고나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눈은 찡그려져 있는데 입은 웃고 있었다.
'이 놈의 작가와 감독..' 이 말만 중얼 거리고 있었다.
주인공 카와지리 마츠코의 삶은 정말이지 파란만장하다. 어릴적 그녀는 누구나 그렇듯 신데렐라 공주 같은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그녀가 달려가는 속도만큼 점점 나락으로 추락해져만 간다. 그런 그녀를 보며 다들 '불쌍한 인생,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계속 사랑을 베풀며 절대로 멈춰서 주저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행동으로 먼저 보이는 여자였다. '이번엔 정말 내 인생이 끝이다'라고 orz 하면서도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다시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있으며, 혼자라는 것은 그녀에게 지옥이라고 어떻게든 사랑받지는 못해도 사랑을 베풀 상대를 계속 찾으면서 그렇게 사랑을 주고 그녀는 행복해 했다. 나중에 그녀의 실제로의 마지막 상대였던 '료'는 그녀를 '신'이라고 표현하지...(그녀의 마지막 상대는 따로 있다 ^^:)
남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는 병든 동생만 챙겨주고, 계속 그녀와 만났던 남성은 그녀를 배신하고 차버리거든..그럼 또 남자는 다 나쁜놈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듯해도, 조금만 더 생각하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 이유가 있고 표현이 서툴고 주저하거나 그녀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지. 그리고 그 심리가 리얼하게 표현이 되니 보면서 그다지 부정은 할 수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녀는 '나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라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된다면 행복이란건 정말 무엇일지 다시 상기해 보는 계기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까 안타깝다고 한건, 나중에 그녀가 모두를 믿지 못하게 되고, 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몇십년째 사람들을 피하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흘러가는 강만 바라보다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자신을 외면하던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병원의 정신과에까지 다니게 된 그녀는, 예전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을 계기로 다시 자신만을 위한 꿈이라는 것을 겨우 되살려낸다..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라는 것을 말이야. 누워서 그 세상을 떠난 병든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허공에 손을 내밀고 머리를 자르는 상상을 해..그러면서 그녀는 미용사가 되서 다시 일어서려는 의욕이 생기게 되고, 그동안 사람을 피하기만 했던 그녀가 우연히 공원에서 밤늦게 놀고 있던 애들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집에 돌아가라'라는 그녀의 전직이었던 교사다운 충고도 하게 돼. 하지만 그 희망의 순간 결국 애들의 장난섞인 악의로 그녀는 피살을 당하고 말지. 친구가 준 명함을 한손에 꼭 쥔 채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주인공이 뻔히 죽을 그 장면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나는 마츠코씨와는 성격이 다르고 그런 극한 상황은 실제로 일어날 리는 없다. 그리고 그녀의 벌였떤 행동에 그다지 동감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보면서 난 정신이 들어버렸다. 뭔가 내 머리속과 이어지는 부분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어느새 숱이 덥수룩하게 많아진 내 머리카락이 주던 무거움과 집안 방구석에 쌓여있는 쓰레기들... 그리고 내 마음에 뭉친 찌꺼기들. 그런 삶은 싫다는 듯 끝나고 머리를 자르고 집안을 뒤집어 청소하고... 비참하고 불행하게 보였던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 멈추지 않는 그녀의 행동력과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리고 영화속에 너무나 생동감이 넘치는 리듬을 주고 이끌어 가던 감독의 능력에는 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내내 그녀를 상징하듯 마구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던 그 템포는 그녀가 죽은 뒤, 마지막 후반부에서는 음악과 함께 유유히 흘러가는 강처럼 서서히 흘러간다.. 이 마지막 부분은 정말 대미다. 베스트 장면이야. 특별한 대사나 나레이션이 나오는 것도, 극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등장인물이 한명씩 노래를 따라부르며 흘러가는 화면의 흐름에 따라 내 뺨의 눈물도 흘러가고....
실제로 이 역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는 나랑 동갑이라고 한다. 그런데 제일 나랑 동년배라는 걸 못믿겠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적어도 나랑 5살 이상은 차이가 있어보이는 분위기. 거꾸로 말하면 내가 저런 나이가 되어버린게고, 아직 철없이 제 나이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되려나. 아무튼 그녀는 23살부터 53살의 주인공을 연기를 했는데, 전에 몇안되는 흘려보낸 작품에서는 항상 정숙하고 차분하고 조용했던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는 생생하게 역동적으로 움직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것도 역할자체나 감독님의 영향이라고 한다고 해도 일리가 있겠지만, 뭔가 단단한 껍질 한 꺼풀을 벗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다른 연기자들도 괜찮았지만, 아마도 연말 시상식 같은데 뭔가 큰 상을 거머쥐어도 어색하지는 않을만한 연기를 펼쳐줬다. 감독과의 전쟁을 벌인 산물이던가..(책으로도 나오는 등 감독과의 갈등이 꽤 화제가 된 모양이다)
감히 이걸 꼭 보라고 추천은 하지 않겠지만, 혹시 나중에 이 작품을 보게 될 때 나랑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면, 기쁠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방 당하고 한동안 질질 끌 내 생각을 하면 절로 '역시 영화는 싫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지만, 보면서 '저 집에만 틀어박혀서 집세는 어떻게 내나' '무슨 자신의 학생이였던 사람과..'라는 생각은 접어두었음 한다. 그런 현실을 잠시 잊으라고 이런 영화도 있지 않을까 싶으니까.
그리고 이 감독님은 역시 음악에 공을 많이 들이는 분인데, 이번엔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진해서 참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OST 말고도 보컬곡을 모은 음반도 함께 발매되었는데, 정말 좋다. 귀도 즐겁다 비록 전작까지 늘 함께 하던 칸노요코씨는 참여를 안했지만 충분히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